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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 노인의 죽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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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단한의원 작성일06-01-05 01:58 조회5,756회 댓글0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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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 노인의 죽음
 
        1

아주 오래된 해수병 앓고 있는 황 노인을 마지막 왕진하였다 요사이
노인의 정신은 뇌 껍질을 벗어나와 깡마른 뼈 속으로만 채워져 내리
는 것 같았다 칼 날처럼 곧추선 정강이 골따라 솟아오른 정신은
부채살 같은 옆구리 늑골에 맺혀 강짜 고집으로 석회화 되었는지
쿨쿨 쿨루 기침할 때마다 글 글 숨쉴 때마다 노인의 혼백도 따라
들썩 거리는 것이었다 그 날 가랑비 내렸는데 수레바퀴 앞에서도
패배를 인정치 않으려는 사마귀 마냥 퀭한 눈으로 눈동자 깊은
곳에서는 퍼런 인광이 스멀댔다 더는 안빼앗기겠다는 듯 쇄골 앙상한
어깨 가득 헛 바람 채워넣고 서있는 관(棺)처럼 음습한 문간에 기대어
앉아 막 현관문을 들어서는 나를 쏘아 보았다
     

        2

그 곳은 최후의 일전을 치룰 미로 속 동굴이었다
냉장고 문과 모든 방문짝에는 체질 별 음식 식단표가 암호 책처럼 도배되어있었다
 씽크대 위 남비며 약탕관 마다 알 수 없는 약초들이 말라 붙은 얼굴을 내밀고
삐죽거렸다 녹즙기는 비밀 병기다
 요근래 삼 년 해마다 결산처럼 절망스런 병증은 하나씩 늘어났고
그때마다 한 웅큼의 알약이 추가되었다


      3

북에서 떠나오던 날 밤 장대비 내렸다
딸 아이 업은 어미의 흐느낌은 빗 속에 묻혔다
그 어미 북망산 묻힌지 오래고 북에 두고온 딸 아이는커서 의사가 되었다 랬다
 평생 속 한 번 썩이지 않던 그림자 같은 서울 자식들은 말이 없었다
헌 구두나 가방 꿰매며 이어온 삶 이었다
 큰 애가 처음 미국 유학 길에 오르더니 한 두 해 간격으로 남은 두 자식 모두 미국으로 떠나 영영 돌아올 줄 몰랐다
 몇 해전 서울의 지들 어미가
숨을 거두자 화장하여 미국의 어느 절에 모셨다


      4

초겨울이었다 찬 비 내리는 날 밤 노인은 한 장의 낙엽으로 떨어져 먼 길 떠나갔다
골무처럼 닳아 딱딱해진 손가락을 구부린 채 빈방에는 기침 소리 멎었다
 다음 날 아파트 경비원이 혀를 차며 사망 진단서 한 장을 부탁해왔다 유서 한 장 남겼다는데 알 수 없었다   


       
    시작:  조월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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