오래된 창고에서 서성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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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단한의원 작성일06-01-05 02:18 조회5,926회 댓글0건본문
오래된 창고에서 서성임
고향에서의 추석 날 밤 가랑비 내린다
우린 내일이면 다시 서울로 떠날 것이다
아이들과 아내 눅눅한 뒷방에 누이고 홀로
오래된 창고에 서성이다
뒷다리 야윈 귀뚜라미 한 마리 힘없이 발등에
뛰어 오른다
구 월인데도 귀뚜라미들은 울질 않는다
창고 계단 밑 반쯤 썩어버린 나무기둥 하나 서있다
흐린 전구불 빛 아래
파란 유리구슬 몇 알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
아 40 년 가까운 세월
어느 해던가 초겨울
강 바람에 까맣게 부르튼 손을 불어가며
두 살 위인 형과 나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
작은 깡통에 유리구슬들을 담아
우리만의 저 나무기둥 아래에 고이 묻었다
이듬 해 봄 골목길 우리들의 영광을 생각하면서
망각은 생의 어느 시 점에서 돌연히 일어나는 것일까
그 때 함께 땅을 파던 다른 손은
백묵을 묻힌 채 오래 전에 고향 땅에 묻혔다
아직껏 잠 못드신 아버지의 힘겨운 기침소리가
늑막 한 켠을 찢고 있다
무엇이 옆구리에 저리도 고여
고약처럼 덩어리져 있는 것일까
석 달이 되도록 C.T.조차 그것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
암은 아닌 것 같다고 의사가 말했었다
매 번 한 웅큼의 약을 드시고도 도무지 차도가 없으시다
창고 다락 옆 아버지의 잡다한 공구들 녹슬어
식은 땀처럼 습기를 품고 있다
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
비오는 추석 날 밤
고향 집에서는 늦도록
모두들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
시작: 조월태
고향에서의 추석 날 밤 가랑비 내린다
우린 내일이면 다시 서울로 떠날 것이다
아이들과 아내 눅눅한 뒷방에 누이고 홀로
오래된 창고에 서성이다
뒷다리 야윈 귀뚜라미 한 마리 힘없이 발등에
뛰어 오른다
구 월인데도 귀뚜라미들은 울질 않는다
창고 계단 밑 반쯤 썩어버린 나무기둥 하나 서있다
흐린 전구불 빛 아래
파란 유리구슬 몇 알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
아 40 년 가까운 세월
어느 해던가 초겨울
강 바람에 까맣게 부르튼 손을 불어가며
두 살 위인 형과 나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
작은 깡통에 유리구슬들을 담아
우리만의 저 나무기둥 아래에 고이 묻었다
이듬 해 봄 골목길 우리들의 영광을 생각하면서
망각은 생의 어느 시 점에서 돌연히 일어나는 것일까
그 때 함께 땅을 파던 다른 손은
백묵을 묻힌 채 오래 전에 고향 땅에 묻혔다
아직껏 잠 못드신 아버지의 힘겨운 기침소리가
늑막 한 켠을 찢고 있다
무엇이 옆구리에 저리도 고여
고약처럼 덩어리져 있는 것일까
석 달이 되도록 C.T.조차 그것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
암은 아닌 것 같다고 의사가 말했었다
매 번 한 웅큼의 약을 드시고도 도무지 차도가 없으시다
창고 다락 옆 아버지의 잡다한 공구들 녹슬어
식은 땀처럼 습기를 품고 있다
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
비오는 추석 날 밤
고향 집에서는 늦도록
모두들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
시작: 조월태